생각과 감정 마음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오욕칠정(五慾七情)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감을 매개로 느껴지는 대로 각자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살아간다. 그러한 결과 지금과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가치관에 따라 판단과 선택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것이 과연 과거부터 지금의 나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나의 미래 인생의 선택과 결과에 충분히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될까? 하는 의구심들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지난 수천수만 년 이상 아주 많은 방법들을 추구한 결과 종교라는 모습으로 사상철학이라는 모양으로 토템신앙의 갖가지 형태로든 명상법 수행 수도법의 형태로든 수많은 해결책들이 전 인류 문화와 문명에 녹아들면서 나타났다. 그런데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형태로 모든 전 인류적이자 전 지구적인 정보의 소통과 접근이 가장 활발한 문명시대에 살고 있지만 더군다나 최근 들어 인공지능의 혁명적 발달로 인해 더 개별적으로의 정보의 취사선택이 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진실로 나의 마음 생각 의식 정신 감정 행동 선택 결과 미래가치 시현에 있어서 아주 충분히 만족하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완전하고도 정확한 확신을 답을 가진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일까? 아마도 아주 희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치원부터 시작해 체계적인 사회교육을 받아온 시간이 십수 년을 넘고 성인이 되었다 하여도 수많은 뉴스 정보 직업 문화 예술 인간관계 등을 통해서 지적 인지적 경험과 향상을 해왔는데 개인으로서의 완성도와 성취도 완벽성에 충분히 자신감을 갖거나 만족하며 앞으로의 발전성에 대한 자신감과 뚜렷한 삶의 목적과 목표가 행복하고 자유로운 나의 삶에 얼마나 충분히 갖추어져 있나 하고 생각해 보면 많이 부족하거나 충분치 않은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많은 경우에 물질적인 성취와 사회 명예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경향도 생기지만 근본적으로 그러한 것을 통해서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마음의 정신의 완전성은 해결이 안되어 동양적인 명상과 수행 수도 등에도 새 길을 찾아보지만 명확하고 정확한 길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한때 유행하던 요가 차크라 명상 호흡 뉴사이언스 등은 물론이고 동서양 고전에서 각종 경전에서도 찾아보지만 확실하고 올바른 길이다 하고 확신하여 행할 수 있는 것은 늘 부족하고 불확실하다.
마음이나 정신 명상 쪽에서 네비게이션처럼 정확한 길과 방향을 제시하는 곳은 별로 없다. 결과를 얻는 책임을 늘 행하는 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에게 맡기는 최종 책임 문제가 있기 때문인데 깨달음과 해탈 같은 도(道)적인 최종 결과물을 얻는 것이라면 수긍은 되지만 과정상에서 진일보한 성취를 얻는 것은 얼마나 정확히 행하는데 달려있다. 누구나 처음부터 마라톤의 42.195Km를 완주할 수는 없지만 5Km 10Km 하프마라톤은 완주할 수가 있다.
처음부터 인간의 마음에 대한 정확한 접근이 모든 시작이자 성공의 핵심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의 내면의 마음 정신 감정 정서 의식등으로 불리우는 그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하는 나라는 나 자신에 대한 접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근원적인 접근법에 대한 교육과 훈련 실행 완결이라는 과정에 대한 학습이 결여되어서 막연한 상태의 접근과 성취 그리고 나를 알아가면 알수록 더 정확하고 정교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워져가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상태의 연속이 되어 도를 마음을 진리를 막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어디든 막연히 도 본성 자아 진아 신성 등으로 무엇이 있다고 하는데 누구나 다 그 자리에 그 실체에 그 결과에 도달했다는 사람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8에서는 그것을 가장 근본적인 접근법 자체를 정확하고 자세히 완전히 처음부터 배우지 못해서 모두가 원하는 그 결과치에 접근이 안 된 것으로 본다. 진리가 있다면 사실이 존재한다면 인간 내면에 신성이나 불성이나 본성이 있다면 그 과정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처음은 같은데 중간은 다르고 나중은 더 다르다면 최종 결과치는 도달할 수가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이해할 사항인가 기피할 대상인가.
인간에게 본성이 신성이 불성이 존재한다면 그 결과치는 같게 되어 있다. 이를 에너지힘입자원리라고 하는데 각자 느끼는 과정과 체험은 달라도 그 결과치는 결국엔 같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 내면을 흔히 마음이라고 한다. 그 마음이 결국 다 같을까 다 다를까?
결국에 다 같아진다. 다만 태어난 시대 상황 부모 형제자매 자연환경 문명화 수준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정도 등에 의해서 여정은 달라지지만 그 근본은 같기 때문에 대동소이한 형태로 진화 진보의 길을 간다. 그것이 또한 마음공부에 수련에 성취에 최종 목적하는 가장 고귀한 결과치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진리가 있다면 어째서 내 진리 네 진리가 다를까? 서로 다른 최종결과치의 진리가 과연 진리인가? 흔히들 생각해 볼 때 우주가 영원불멸하게 태어난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었다면 모를까 언젠가 탄생하고 진화하고 소멸하게 된다면 태어난 그 시작 자체는 우주의 어느 은하 별에 존재하더라도 똑같은 결과치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과 같다. 같은 형제자매가 여럿이고 각자 각자 생김새나 성격 행동 취향 등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들의 부모는 동일한 것과 같다.
수련 역시 그 자신의 마음을 수행 수도 하듯이 명상하며 행한다면 그 여정과 결과치 역시 어느 순간에 같아진다. 그리고 그 같은 점에서 다시 다음 여정은 달라지지만 그 여정의 어느 종착점에서의 결과치는 같아진다. 이러한 것이 반복되면서 도에서 마음에서 말하는 최종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자리 역시 누군가가 도달했다면 그 결과치는 같아진다. 우주가 시작했던 그 시작점에 도달했다면 그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수학적 입자적 에너지적 상태가 같을 수밖에 없고 우주 이전에 자연 이전의 상태에 도달했다면 그 역시 결과치의 값이 같아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진리에 사실에 도달하는 방법의 습득이 중요한데 그것을 최초로 행할 수 있는 것이 무8이라는 과정이자 결과치의 동일성이다. 무=無인데 한자적 표현으로 볼 때 無란 없는 것이 아니라 다 있다는 의미이다. 무를 없다고 보통 인식하는데 그것은 무에 도달하기 전 상태에서 볼 때는 없다가 맞고 무에 도달한 이후엔 있다가 맞기 때문이다. 아직은 무에 도달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기존의 나가 마음이 정서가 감정이 존재의식이 생각이 정신이 있다를 없애야 하기 때문에 없다가 강조된 현상일 뿐이다.
그 없다를 진정으로 최초로 제대로 터득하는 것이 무8의 시작이며 이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현상이다. 61세가 되었다면 환갑이라고 하는데 그들 전체에게 언젠가 태어났고 언젠가 한 살, 두 살, 열 살, 이십 살이 되었던 때가 있으며 그때는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다. 최초로 처음으로 무8을 통해서 진정한 무에 도달했다면 그 방식 그대로 그것을 행한다면 3차원은 물론이고 4차원도 5차원도 6차원도 9차원도 11차원도 그 이상의 경지도 같은 방식으로 도달케 되어있다.
무8 수련은 그 완전한 방식을 최초로 처음 터득하는 과정이다. 그 결과로 유한한 줄로 알았던 인간이 정신과 마음이 무한한 인간으로 되는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목적하는 바를 무엇이든 행하고 성취할 수 있는 첫 출발선에 선 것이다.
이것이 무8 수련의 진정한 의미이다.